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 끝자락,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에 자리한 모로코는 중동과는 또 다른 결의 이슬람 문화를 간직한 나라다. 이곳은 아랍, 베르베르, 프랑스, 스페인 문화가 섞여 독특한 색채를 이루고 있으며, 이슬람 신앙은 그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모로코의 무슬림 문화는 종교적 경직함보다는, 전통과 환대, 일상 속 관습의 모습으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번 글에서는 모로코 무슬림들이 살아가는 방식, 음식과 예절, 그리고 삶의 리듬 속 이슬람적 정서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1. 모로코 여성의 복장과 거리의 풍경
모로코에서는 히잡을 쓰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는 법적인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다. 아랍권 국가이면서도, 모로코는 복장에 있어 꽤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수도 라바트나 마라케시 같은 대도시에서는 머리를 가리지 않는 여성, 스카프를 세련되게 연출한 여성, 아예 현대적인 옷차림을 한 이들이 함께 거리를 오간다. 히잡은 종교적 실천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 배경이나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하나의 문화적 요소다.
거리 풍경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수크(souk, 전통시장)에서는 여성들이 자주 전통의상 ‘젤라바(jellaba)’를 입고 다니며, 이는 무슬림 문화와 베르베르 전통이 만나는 아름다운 융합이다. 도시 외곽이나 시골 지역에서는 보다 보수적인 복장을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에서는 개성 있는 스타일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모로코의 복장 문화는 종교의 경계보다는 사회적 다양성과 관용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무슬림 여성의 역할 또한 복장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모로코에서는 여성의 교육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는 단지 신앙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 이슬람 사회가 어떤 유연함으로 발전 중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2. 민트차 한 잔과 함께하는 손님맞이의 예절
모로코에서 ‘환대’는 단순한 친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슬람 교리는 손님을 정중히 대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고 있으며, 모로코 사람들은 이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한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모로칸 민트차(Atay)**다. 뜨겁고 달콤하며 박하 향이 가득한 이 차는, 손님을 맞이할 때 빠지지 않고 제공되는 일종의 ‘인사’와도 같은 존재다.
민트차를 따르는 방식도 그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다. 주인은 높게 찻주전자를 들어 컵에 따르며 거품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정성을 담은 환대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손님은 이 차를 마시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빵이나 과자와 함께 작은 식사를 나누기도 한다. 이 시간은 단순한 다과 시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와 공동체 감각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손님맞이뿐 아니라 이웃 간에도 이런 예절은 일상이다. 라마단이나 주요 종교 명절에는 가족뿐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음식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나눈다. 이처럼 모로코의 이슬람 문화는 공동체 중심의 유대감과 삶의 온기가 뚜렷한 특징이다.
3. 일상을 따라 흐르는 예배와 신앙의 리듬
모로코의 하루는 이슬람의 기도 시간에 맞춰 리듬을 탄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는 도시 곳곳의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아잔(기도 호출 소리)으로 알려지며, 이는 단지 종교적 호출이 아니라 일상의 시간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정오와 저녁 무렵의 기도 시간은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거나 잠시 멈추고, 기도하러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기도를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모스크로 향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한다. 종교적 실천에 있어서도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기도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신앙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하루의 흐름 속에 규칙적으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공동체와 신과의 연결을 확인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라마단 기간이 되면, 이런 리듬은 더욱 특별해진다. 해가 지면 거리는 북적이고,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이프타르(금식 종료 식사)’를 나눈다. 공공 광장이나 모스크 주변에는 무료 식사가 제공되기도 하며, 금식의 고됨을 함께 나누는 이 문화는 이슬람의 연대감과 배려의 정신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시간이다.
모로코의 무슬림 문화는 마치 모자이크처럼, 각기 다른 색과 형태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베르베르 전통, 아랍 문화, 유럽식 세속주의가 교차하는 이 땅에서 이슬람은 경직된 율법이 아닌, 삶을 구성하는 유연하고 인간적인 실천으로 자리 잡고 있다. 히잡을 쓴 여성과 세련된 도시인이 함께 거리를 걷고, 민트차 한 잔에 마음을 여는 손님맞이 문화, 하루 다섯 번의 기도가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리듬.
모로코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깨뜨린다. 그 속엔 규칙이 아니라 온기가 있고, 엄격함이 아니라 여유가 있으며,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 존재한다. 모로코를 통해 우리는 이슬람 문화의 또 다른 얼굴 가까이 있고, 부드럽고, 다정한 일상의 일부로서의 무슬림 문화를 만날 수 있다.